# 감상평 **모두가 예스라 답할 때, 노라고 말 할 수 있는 사람**. 어렸을 때는 이러한 사람이 되라는 말을 많이 들었었다. 하지만 지금의 내가 '이러한 사람인가'를 생각해 봤을 때 그렇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현재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위 같은 조언을 해주는 것이 의로운 것인가'라고 되물었을 때 이 또한 그렇다고 선뜻 답하기 어렵다. 내가 생각했을 때 세상 사람들은 자신들의 의견에 반대하는 것이 자신들에게 대항하는 큰 공격이라고 생각한다. 모두가 '사람마다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마치 자신의 생각은 당연히 맞다고 단정하며 행동한다. 이러한 특성은 비슷한 생각을 가진 개인들이 집단(사회)이 되면서 더욱 커지게 되며 그러한 극단적인 사회에서는 비윤리적인 사고와 행동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받아드려지게 된다. 그들에게는 사소하지 않은 것들이 **사소한 것**이 되며 이에 대항하면 그 사람은 이상한 사람, 특이한 사람, 귀찮은 사람이 되는 것이다. 나는 집단의 사소한 것을 사소하지 않게 볼 수 있는 눈이 있는가, 사소하지 않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가 있는가. 부끄럽지만 없는 것 같다. 이 책의 주인공, 펄롱이 위험에 처한 아이를 구할 때 주변 사람들은 그 아이가 안 좋은 상황에 처한 것을 '어쩔 수 없는 일'라고 취급하며 펄롱이 이 일에 간섭하기를 원하지 않는다. 펄롱의 아내는 가정의 평화를 위해, 수녀원 사람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펄롱을 제재한다. 하지만 결국 펄롱은 그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아이를 구하기에 이른다. 제 3자의 입자에서 보면 펄롱의 행동은 멋있다. 불의를 두고 보지 않으며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어린 아이를 구한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라면 할 수 있을까? 나라면 행복한 가정을 깨트리면서까지 모르는 사람을 위기로부터 구할 수 있을까? 어렵다. 아니 사실 못할 것이다. 나 또한 이러한 일들을 **사소한 것들**로 치부할 것 같다. 예전에 나는 '모두가 예스라 답할 때, 노라고 말 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 타당하다 여겼으나 사회를 살아가면서 지켜야 할 것들이 생겨버린 지금 나는 계산적이고 자기중심적으로 행동하는 사람이 되었다. **"서로 돕지 않는다면 삶에 무슨 의미가 있냐"** 이 책은 계산적인 나에게 죄책감과 부끄러움을 심어주는 것 같다. 펄롱 행동들은 나에게 **사소한 것**이 '방관'이 아니라 '남을 돕는 것'이라고 얘기하는 것 같았다. 내게 사소한 것은 무엇인가. 펄롱의 용기인가 그의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말하던 무관심인가. 흑과 백 사이에 있는 회색 같은 내 마음에 씁쓸함을 느꼈다.